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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기술은 빼앗기고 책임은 없다”

하도급 ‘기술유용’에 칼 빼든 중기부, 두원공조·현대케피코 고발 요청

대한민국 제조 산업의 허리를 지탱하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기술이라는 땀의 결과물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의 상대가 다름 아닌 자신에게 납품을 받는 ‘원청 기업’이라는 사실은, 우리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 요청한 ㈜두원공조와 ㈜현대케피코 사례는, 그 중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기술탈취’의 전형적인 전개를 담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 9월 30일 ‘제31차 의무고발요청 심의위원회’를 열고 두 업체가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판단,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이번 고발 요청의 핵심은 기술자료를 무단으로 요구하고, 유용하고, 제3자에게 제공했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들이 재벌계열의 중견·대기업이라는 점에서 사안은 더욱 무겁다.

㈜두원공조는 현대기아차 등에 자동차용 공조시스템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7년부터 2023년까지 7개 수급사업자에게 총 99건의 금형도면을 요구하면서, 법에 따라 필수로 제공해야 할 ‘기술자료 요구 서면’을 제공하지 않았다. 기술자료를 넘겨받으면서도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이 자료들을 협의 없이 자사 해외 계열사 및 경쟁업체에 제공했다. 이미 공정위로부터 재발방지 명령과 3억 9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지만, 중기부는 ‘처벌 수위가 부족하다’는 판단 아래 고발 요청을 결정했다.

[기획] “기술은 빼앗기고 책임은 없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

현대자동차의 부품 계열사인 ㈜현대케피코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한 수급사업자가 베트남 동반 진출을 거절하자, 그 업체의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들과 계약한 수급업체에게만 비밀 유지 의무를 지우는 ‘부당특약’까지 설정한 정황도 드러났다. 공정위는 지난 7월 현대케피코에 4억 7,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두 사례 모두 단순한 절차 미비가 아니다. 수급기업 입장에서는 수년간 축적한 노하우와 생산 기반을 무단으로 침해당한 셈이며, 이는 사업 존속 자체를 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술자료의 무단 유출은 거래처 상실, 단가 후려치기, 심하면 경쟁업체에 유사 제품이 등장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이번 고발 요청의 법적 근거인 ‘의무고발요청제도’는 이런 반복적이고 구조적인 불공정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의무고발요청제는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사건 중에서도 중소기업의 피해가 크거나 사회적 파장이 클 경우, 중기부가 별도로 검토해 공정위에 ‘검찰 고발’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중기부가 요청하면 공정위는 반드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2014년 제도 시행 이후 실질적으로 법망을 빠져나간 대기업의 기술유용을 견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치 중 하나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기술유용이 하도급 거래에서 일상처럼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자동차 금형업계는 복잡한 공급망 구조 탓에 수직적 거래 관행이 고착화돼 있으며, 그 안에서 ‘묵시적 요구’나 ‘형식적 계약 누락’이 기술 탈취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기술은 중소기업에게 생명줄이다. 그것이 보호받지 못한다면 기술혁신은 공염불이 되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무너진다. 기술을 무단으로 가져간 원청은 이득을 취하고, 피해를 입은 수급사는 침묵한다. 이 고질적인 불공정 구조를 얼마나 단호하게 바로잡을 수 있는가, 이번 고발 요청이 그 시험대에 올랐다.

중소기업의 땀을 지켜내지 못하는 산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발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변화는 불공정 거래의 '관행'을 관철시켜온 구조 자체가 흔들릴 때 가능하다. 이제 공은 검찰과 법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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