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니다. 소득 수준의 향상과 의료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늘렸지만, 그 삶의 질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는 체계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특히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둘러싼 최근의 변화와 과제는 고령사회의 본질을 되묻게 만든다.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도 안에서 다시 꺼내게 만든다.
2008년 시작된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도입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빠르게 확대되었다. 매년 증가하는 예산과 수급자 수는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 결과이자, 반대로 이 제도를 둘러싼 재정적 압박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올해 예산은 17조 4천억 원.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2년 연속 20% 넘는 감소폭을 기록했고, 준비금 적립 비율은 법정 기준을 한참 밑돈다. 재정 당국은 불과 1~2년 내 적자 전환, 2030년이면 준비금이 바닥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단지 ‘돈의 문제’로 축소해선 곤란하다. 이 제도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장기요양기관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의 삶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결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매년 2천 건에 육박하는 부정수급 사례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현장 조사는 전체 기관의 5%도 채 되지 않는다. 요양기관의 인건비 미준수율은 20%를 넘지만, 이를 제재할 명시적 규정조차 부재하다. 현장은 느슨하고, 제도는 방관하며, 책임은 무의미한 수치로 흩어진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중심축인 요양보호사의 현실은 구조적 저임금과 인력 이탈로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자격을 갖춘 인력 중 22.8%만이 실제 현장에 종사한다는 수치는 그 자체로 절망적이다. 이 추세라면 2043년까지 약 99만 명의 요양보호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정부 추계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돌봄은 제도의 말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간 존엄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현장의 노동에 대한 처우 개선 없이 어떤 제도도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정작 제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도 헛발질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요양병원 간병비 제도는 법에 명시돼 있으나 15년이 넘도록 시행되지 않았고, 오히려 복지부는 별도 시범사업 형태로 유사한 간병비 지원을 추진 중이다. 정책의 목표와 수단이 따로 노는 상황. 이중 지출과 행정 낭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무게를 온전히 국가가 감당할 수는 없다. 공동체 전체가 그 무게를 나눠 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요양 서비스를 둘러싼 통합적 관리체계, 부정수급 방지를 위한 디지털 시스템 고도화, 지정갱신제와 같은 정책 수단의 정합성 강화가 필수다. 제도를 설계한 주체와 실행하는 주체, 현장에서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이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단지 하나의 복지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고령사회 대한민국이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를 묻는 거울이자, 가족이 홀로 떠안고 있던 돌봄의 무게를 사회가 분담하기 시작한 첫 실험이다. 이 제도를 통해 우리는 개인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 돌봄의 윤리를 어떻게 사회적 계약으로 전환할 것인지 시험받고 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제도를 통해 지켜야 할 인간의 삶이다. 제도의 붕괴는 곧 존엄의 침식이다. 이 단순한 진실이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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