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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 "기술만 내놓으라 해놓고, 법은 없다"…中企 기술탈취 방치하는 민낯

‘보호 없는 부흥정책’의 빈틈, 김정호 의원 ‘기술보호 3법’으로 메우나

기술 탈취는 더 이상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AI, 반도체, 우주항공,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는 대한민국이지만, 그 토대를 이루는 중소기업의 기술은 보호받지 못한 채 약탈당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드는 기둥이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 기술탈취의 실태는 암울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3년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의 88.4%가 끝내 소송을 포기했다. 이기기 어렵고(특허침해소송 승소율 11.1%), 이겨도 실익(손해배상액 청구액의 17.5%)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 입증 책임을 온전히 피해자에게 지우는 구조 탓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제도는 ‘기술을 훔쳐도 벌이 크지 않다’는 잘못된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기술탈취가 저위험 고수익의 합리적 전략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 의원은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첨단·혁신산업 선도 국가로의 도약을 위한 기술 보호 정책 제안》을 통해 이른바 ‘기술보호 3법’을 공개했다. 산업 부흥을 외치는 목소리만 높을 뿐, 기술 생존을 위한 울타리는 여전히 부실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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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3법으로 막는다
기술탈취 피해의 증거는 대부분 가해 기업 내부에 있다. 하지만 현재 민사소송법 체계에서는 상대방의 자료 제출을 강제하기 어렵고, 그마저도 영업비밀 침해 소지로 거부당하기 일쑤다. 피해 기업이 자료를 확보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여기에 더해, 첨단 기술에 대한 법원의 이해 부족 역시 문제로 꼽힌다. 현재 기술심리관 제도가 있으나 단순 자문에 그쳐 판결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 어렵다. 변리사는 소송 대리 자체가 불가능해, 기술적으로 난해한 분쟁도 법률 전문가만이 전담해야 하는 구조다.

김정호 의원이 제안한 첫 번째 해법은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이다. 법원이 지정한 제3의 기술 전문가가 피고 기업을 현장 조사해 핵심 증거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일본, 독일 등은 이미 도입한 방식이다. 김 의원은 “전문가 사실조사와 자료보전명령을 결합해 기술자료의 은닉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영업비밀 보호를 위해 변리사의 참여 보장 등 보완책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변리사 공동소송대리 허용' 역시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특허 소송에서 변호사만이 대리권을 갖는다. 그러나 기술 자체가 쟁점이 되는 소송에서는 기술 전문가인 변리사의 참여가 절실하다. 김 의원은 “일본은 2002년부터 변리사의 공동대리를 허용해 재판 기간과 비용을 모두 줄였다”며 “국내에서도 기술소송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특허법원 중심의 '기술판사 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기술심리관보다 직접적인 판단 권한을 갖는 '기술판사'를 배치해, 기술 분쟁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유럽통합특허법원(UPC)과 미국, 일본도 유사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기술 보호,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
기술 보호는 단지 법적 권리 문제가 아니다. 김 의원은 “기술 보호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존속을 결정짓는 인프라”라고 강조한다. 이어 “정부가 수조 원의 R&D 예산을 쏟아붓고도 기술이 사장된다면 그건 투자 실패이자 정책 실패”라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내 R&D센터 설립을 꺼리는 주요 이유 중 하나도 ‘기술보호 제도의 미비’라는 점이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보호 장치가 없다면, 기술 협력은 기피 대상이 되고, 산업 생태계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보호 없는 부흥은 모래성이다”
정부는 ‘초격차 산업’, ‘AI 반도체 패권’, ‘30대 미래 프로젝트’ 등 야심찬 청사진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보호의 법제도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 청사진은 모래 위에 세운 성에 불과할 수 있다.

김 의원은 “기술 보호 없이 산업 전략만 외치는 것은 집을 지으면서 기초공사는 빼먹겠다는 얘기”라며 “부흥과 보호는 양립이 아니라, 동시 추진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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