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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검은 전기, 하얀 거짓말

6천600억 보조금에도 멈춘 충전기…신뢰를 충전해야 할 때

[데스크칼럼] 검은 전기, 하얀 거짓말 - 산업종합저널 전기
전기차는 미래였다. 매연 대신 조용한 바퀴 소리가 도로를 달리는 도시는 기후위기를 넘어설 희망으로 여겨졌다. 국가는 그 바람을 ‘보조금’으로 뒷받침했고, 지난 5년간 6천600억 원이 투입됐다. 목적지는 분명했다. 탄소중립,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멈춰 선 충전기들로 귀결되고 있다. 전국에 43만 기가 설치됐지만, 수만 기는 작동하지 않는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6월 발표한 점검 결과, 한 해 이상 방치된 충전기만 2천700기를 넘었다. 상태 정보조차 표시되지 않아 시민들은 여전히 ‘고장 지도’를 들고 헤매야 한다.

문제는 행정력 부재에 그치지 않는다. 보조금이 투입됐음에도 돈의 흐름은 불투명했다. 사업자 선정은 허술했고, 신생 기업에 만점을 주는 방식으로 부실 업체가 대거 선정됐다. 이들이 설치한 충전기에서 전체 고장의 80% 이상이 발생했다. 한 업체는 177억 원의 선급금을 받아 자회사에 충전기를 고가 납품해 차익을 챙겼고, 이 과정에서 73억 원이 엉뚱한 용도로 쓰였다. 충전기 설치 과정에서 부가세조차 제대로 신고되지 않아 121억 원이 과소 납부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보조금은 원래 공공 신뢰를 담보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기업 주머니로 흘러들었다. 국무조정실은 뒤늦게 부가세 수정 신고를 지시했지만, 이미 새어 나간 세금과 이용자의 불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보조금이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사적 이익으로 전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허점이다.

이제 충전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윤리의 문제다. 출발점부터 기울어진 혁신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가장 빠른 전기차보다 중요한 건 가장 바르게 운용되는 제도다. 시민들은 기술을 믿고 국가는 정책을 내세우지만, 그 신뢰 위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지 묻는 질문은 여전히 희미하다.

정부는 현장점검 전담 조직과 실시간 상태정보 공개를 약속했다. 그러나 단발성 대책에 그친다면 풍경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 사회에 필요한 충전은 기계가 아니라 신뢰다. 하얀 거짓말로 포장된 전기의 미래가 검은 예산 낭비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정책을 집행하는 손부터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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