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축인 내수 소비가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끊임없이 추락하며 심각한 구조적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와 부동산에 묶인 자산, 고령화 쇼크가 맞물리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비 규모마저 주요 선진국 밑바닥 수준으로 곤두박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위기부터 코로나19까지… 1.2%로 주저앉은 소비 성장률
대한상공회의소가 23일 내놓은 '내수소비 추세 및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를 보면 1988~2024년 구간의 경제 지표는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88~1996년 9.1%를 구가하던 연평균 소비 성장률은 2003~2007년 3.1%로 꺾였고, 2020~2024년 1.2%까지 주저앉았다. 외환위기와 카드대란을 거쳐 금융위기, 코로나19 쇼크를 연달아 맞으며 성장 동력이 계단을 내려오듯 푹푹 꺼진 셈이다. 소비가 쪼그라들면서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도 2002년 56.3%에서 2021년 47.1%로 급감했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8위에 머물렀으며, 국내총생산 1조달러 이상인 12개국 명단에서도 11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 밑에 자리한 국가는 사실상 인구 1천만명 이하 소규모 경제권뿐이다.
지갑 닫은 65세 이상… 부동산에 묶인 1천927조원 부채 폭탄
내수 가뭄을 굳어지게 만든 근본 원인으로는 급격한 노령화와 기형적인 자산 쏠림 현상이 지목된다. 2000년 7%에 불과했던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4년 20%로 폭증했다. 노년층의 소비성향은 2006년 81.3%에서 2024년 64.6%로 곤두박질치며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지갑을 열지 않는 계층으로 전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체 가계자산의 70.5%가 부동산에 쏠려 있으며, 임대보증금을 포함하면 77.3%에 달해 현금 가뭄을 부추기고 있다. 가계 신용 역시 2002년말 465조원에서 2024년말 1천927조원으로 4배 넘게 폭등했다. 덩달아 불어난 금리 인상발 이자 상환 압박이 소비 여력을 짓누르는 형국이다.
취업유발계수 6.3명 반토막… 일자리 잃은 제조업의 그늘
산업 현장의 고용 창출 기능 상실도 뼈아픈 대목이다. 제조업 취업유발계수는 2000년 15.4명에서 2020년 6.3명으로 반토막 났다. 국가 수출을 견인하는 반도체와 화학 주력 수출 분야조차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힘이 현저히 떨어지며 가계 소득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사이버코리아 21' 벤치마킹… 공격적 인프라 투자가 돌파구
대한상공회의소는 위기 타개책으로 'Recession Attacking(공격적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구축을 비롯한 미래 산업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선제적으로 풀어 단기 충격을 흡수하자는 구상이다. 1999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가동했던 사이버코리아 21 프로젝트가 롤모델이다. 당시 14%에 달하는 정보통신산업 연평균 성장률을 끌어내며 연관 업종 일자리 폭발을 유도했던 성공 방정식을 재현하자는 취지다. 단기 처방전으로는 노후차와 전기차 교체 지원,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 제도를 제안했다. 노년층의 얼어붙은 씀씀이를 녹이기 위해 사망보험금 유동화와 주택연금 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더했다.
구조 개혁 없는 땜질 처방 한계… 종합 전술 절실
체질 개선을 향한 중장기 과제도 산적해 있다. 해외 인구 유입을 촉진하고 성과임금제를 확산시켜 소득 구조를 개편해야 하며, 흔들리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중간재 서비스산업 육성에 매진해 끊어진 수출 제조업 일자리 사슬을 다시 이어 붙여 내수 기반을 구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현수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단기적 소비 회복책만으로는 내수 침체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선을 그으며, 경기 대응과 구조 개혁이 병행되는 종합 전략이 요구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