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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Culture] 산업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존엄

기계 부품처럼 소모되는 사회상 꼬집은 <모던 타임즈>

무미건조한 표정의 한 남성이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5조, 속도를 더 높여 401로” 이에 반응한 작업자는 레버를 돌려 공장 한편의 컨베이어벨트 속도를 한층 더 높인다.

찰나의 시간이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제품은 근로자 손을 거치지 않은 채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노동자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산업+Culture] 산업과 기술 그리고 인간의 존엄 - 산업종합저널 동향
강박에 시달리다 컨베이어 벨트 안으로 빨려 들어간 찰리는 그 안에서도 볼트를 조이고 있다.(사진=네이버 영화)


1936년 개봉한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자본주의 산업화 시대 속 기계 부품처럼 소모되는 당대 사회상을 고발하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철강‧전기 공장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찰리(찰리 채플린)는 어김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볼트를 조이는 업무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순간, 철강 제품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 버리는 탓에 공장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리며 조이고, 망치질하는 등 단순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관리자급의 직원은 불량률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를 쉴 새 없이 다그치고, 제품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공장 지배인은 급기야 근로자들의 점심 식사마저 통제하려 든다. 주인공 찰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이는 강박증에 빠진다.

마침내 주인공이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한편으론 섬뜩하기도 하다.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빨려 든 것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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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점심 식사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자동 배식기를 시연하는 장면. (사진=네이버 영화)


아직도 한국은 과로사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한국에서 5년(2017~2022년)동안 과로로 사망한 근로자는 2503명으로 조사됐다. 매년 500명의 근로자가 격무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산재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직 고용자, 플랫폼 노동자를 제외한 수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로사 근로자는 집계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 시대가 지나고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과로는 지속적이다. 몇 년 전 ‘구로의 등대’, ‘구로의 오징어잡이 배’라는 단어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된 바 있다. 한 IT회사의 개발자들이 새벽 내내 근무를 하느라고 건물의 전등이 온종일 밝혀지면서 등장한 자조적 단어로 시대가 바뀌어도 근로자의 과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지난 14일 OECD에서 발표한 OECD 회원국 노동시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 평균 근로 시간은 1천915시간으로 집계됐다.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노동 시간은 10% 이상 감소했지만, OECD 회원국 가운데 5위이며, 평균보다 약 200시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당시 한국의 노동 시간은 2천136시간으로 OECD 국가 가운데 1위였다.)

이는 주 5일 근무, 주 52시간제와 워라벨 문화 장려 등 그동안 과로를 줄이기 위한 많은 노력도 있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시사점을 안겨준다.

과로 노동이 한국이 처한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관점도 있다. 천연자원도 적고, 제조업 중심에 급격한 산업화를 이룬 한국에서 인적자원은 국가 핵심 자산이라는 것이다.

노동력 투입이 곧 경쟁력이라는 말인데, 근로 시간을 줄이면 경쟁 기반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지나친 격무로 인적자원을 잃는 것 또한, 국가 경쟁력 약화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월드컵 개최지 카타르에서는 행사 준비 기간 동안 동원된 400명 이상의 이주 근로자가 안전사고 및 과로로 숨졌다.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강제 노동자가 캐낸 광물이나 면화 등은 헐값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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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술 그리고 존엄
산업과 산업, 기업과 기업 간의 경쟁에서 이젠 개인과 개인으로, 경쟁의 장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각축장이 자본의 무한 경쟁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는 원리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모던 타임즈가 세상에 나온 지 8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760년 시작된 산업화 시대로부터는 2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겼다.

산업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물어다 줬지만, 행복의 씨앗을 심는 것은 산업도 기술도 아닌 바로 인간의 몫이 아닐까.

한편, 공장에서의 해고 후 거리를 전전하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주인공 찰리는 영화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운내요! 죽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린 버틸 거예요” 86년이 흘렀지만, 영화 속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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