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산업의 기술력을 보유한 1천300여 개 소공인들이 집적돼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철공단지. 1960년대 소모성 부품들을 수급하기 위해 형성된 문래동 철공단지는 1970~80년대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이처럼 쇠락해가는 문래동을 살리기 위해 등장한 청년 기업이 있다. 본지는 공유가치창출(CSV)기업 ㈜커너스를 만나 스타트업과 철공소를 잇는 ‘영등포구 메이커스’의 사업 과정에 대해 들어봤다.
1편 :
소공인들의 집합소 문래동 철공단지, 현주소는?
2편 : ‘아이디어·스타트업·펀딩’ 문래동에 낯선 이가 왔다
3편 : 문래동의 장인들
취재: 고성현, 박소연
청년 스타트업이 낸 아이템 기획안을 문래동 철공단지가 직접 만들고 양산한다. 2019년부터 시작된 ‘영등포 메이커스·아이디어펀딩’은 청년 스타트업과 기술자가 한 팀이 돼 아이템을 만들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매하는 영등포구청과 ㈜커너스의 협력 사업이다.
영등포 메이커스는 올해 5월, 참가 접수를 마감하고 스타트업 및 기술자가 한 팀으로 구성된 8개 팀과 세 번째 지역 상생 사업에 돌입한다.
상생 위해 상처 입은 문래동 철공단지의 문 두드리다
스타트업 컨설팅 전문 기업 커너스는 성수동과 을지로 일대 지역 사업 ‘성수동 수제화 프로젝트’와 ‘동대문 상상패션런웨이’를 주도한 뒤 지역 상생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문래동 철공단지가 줄어들고 있단 소식을 듣고, 영등포구청과 함께 문래동 상생 사업 ‘영등포 메이커스’를 시작했다.
![[철공단지②]‘아이디어·스타트업·펀딩’ 문래동에 낯선 이가 왔다 - 산업종합저널 동향](http://pimg.daara.co.kr/kidd/photo/2021/06/21/thumbs/thumb_520390_1624269113_43.jpg)
왼쪽부터 김성필 팀장, 최미선 디자이너, 정해엽 대표.
커너스 정해엽 대표는 초기 사업을 진행할 때 문래동에 지역 상생 관련 기획이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며 “지역 주민에게 인정조차 받지 못한 게 대다수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문래동 기술자들의 불신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회성 사업을 벌인 뒤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고 떠난 앞선 사업가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배타적인 분위기로 협력 업체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도 커너스는 손을 놓지 않았다. 그만큼 지역 상생에 공헌하고 싶다는 도전 의식이 컸다. 난관 속에 시작한 영등포 메이커스 사업은 첫해 단 두 개의 협력팀으로 소소한 출발을 알렸다.
“펀딩하러 왔지?” 눈높이 맞추자 시선 변했다
커너스는 청년 스타트업과 산업기술자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금형, 목형업 등의 시스템은 공정 과정, 도장 종류 등을 익히기 쉽지 않은 스타트업에게는 진입장벽이 다소 높았고, 나이가 많은 문래동 기술자에게 크라우드 펀딩과 같은 새로운 시장은 생소하기에 서로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상품성을 받아들이는 견해 차이도 있었다. 청년들이 ‘인센스 홀더’를 아이디어로 내놓자, 문래동 기술자는 ‘무슨 향꽂이를 사겠냐’는 반응을 내비친 것이다. 정 대표는 “청년들이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제품의 가치를 설명하면서 설득을 거듭했다. 이윽고 기술자분이 이를 받아주셨고, 그 결과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서로의 눈높이를 맞춰가며 진행하자 장기적인 협업 가능성이 열렸다. 스타트업은 기술자의 폭넓은 견해와 용어를 배워가며 아이디어를 다듬었다. 기술자들은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이 활용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 결과, 2019년부터 시작한 영등포 메이커스 사업은 현재까지 참여한 6개 팀 중 4팀이 펀딩에 성공했다. 펀딩에 성공한 팀은 펀딩 시작 금액(100만 원)의 2배에서 많게는 22배까지 달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 대표에 의하면 최근에는 청년들이 펀딩을 위해 문래동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는 기술자들이 문래동에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펀딩하러 왔지?’라며 실질적인 조언도 해주곤 한다”라고 말했다.
펀딩을 시작으로 ‘자생’ 가능한 문래동 사업 기반 만들고파
커너스의 펀딩 사업은 문래동의 활로를 열어주는 시작점이다. 영등포·문래동의 공장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소개하며, 문래동에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시해 자생 가능한 사업 기반을 만드는 게 커너스의 목표다.
특히 지난해 이 사업에 참여한 도예 도구 제작팀 ‘홍툴’은 수익 모델 전환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례다. 국내서 단 두 곳뿐인 도예 도구 공급 업체는 중국산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독과점 공급이다 보니 도예가를 위한 맞춤형 제품이 없었는데, 문래동에서 맞춤 제작한 이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해외 진출 가능성까지 점칠 수 있었다.
“홍툴과 같은 사례가 성장해서 주문 요청이 꾸준해지면 문래동에서는 두세 개의 공장이 가동된다. ‘메이드 인 문래’가 브랜드화 될 수 있는 계기”라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문래동 사업을 두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 꽃 한 송이를 심는 일’이라고 비유했다.커다란 수익을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닌, 문래동의 자생과 새로운 시작점을 만드는 것이 커너스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우리는 많은 이들이 문래동을 찾게끔 하는 계기를 만든다. 나중에 우리가 떠나더라도, 곳곳에 심어둔 꽃이 다른 이의 눈에도 띄어 ‘우리도 꽃을 심어볼까’란 생각이 드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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