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이라는 말이 흔해졌으나 공장과 물류창고 풍경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컴퓨터 속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은 이미 일상이 됐지만 사람 대신 물건을 들고 나르는 로봇이나 공정 전체를 스스로 조정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일부 선도 기업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전 세계 제조·물류 기업들이 올해 주목하는 키워드는 물리적 간극을 메우는 ‘피지컬 AI(Physical AI)’다. 거대 언어모델과 비전 AI를 로봇 및 센서와 결합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새로운 ‘디지털 노동자’를 만들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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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앞세워 휴머노이드와 자율로봇 상용화를 서두르고 유럽과 일본은 정밀 제조 및 자동차 분야서 자체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도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정부는 2026년 예산안서 “AI 3대 강국 도약”을 내세우며 10조1천억원 규모 AI 투자를 편성했고 제조와 농업 분야서 ‘풀스택 피지컬 AI’ 역량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경기도는 AI 9대전략과 성남 ‘피지컬 AI 랩’, 시흥 ‘피지컬 AI 확산센터’를 잇달아 내놓으며 수도권 제조벨트를 실험장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기획 기사는 네 편에 걸쳐 글로벌 경쟁 최전선과 정부 및 경기도의 투자 전략을 짚어본다. 시흥 확산센터 설계와 산단 재생 실험을 포함해 인력 및 규제와 수익성 확보라는 숙제를 점검한다. “피지컬 AI, 한국 제조의 다음 10년”이라는 이름 아래 시흥서 시작되는 실험이 한국 제조업 체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화면 밖으로 나와 공장 걷는 ‘디지털 노동자’ 시대
글로벌 기술 및 제조업계 시선은 이제 화면 속이 아니라 현장을 향하고 있다. 거대 언어모델(LLM)과 비전 AI가 공장을 걷고 물류창고를 오가며 사람과 나란히 일하는 시대를 두고 각국이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미국과 중국 및 유럽의 빅테크와 로봇 기업들은 앞다투어 휴머노이드와 자율이동로봇(AMR) 및 협동로봇에 생성형 AI를 결합해 ‘생각하는 로봇’ 대량 양산 속도를 겨루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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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CES를 비롯한 글로벌 테크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키워드 역시 피지컬 AI였다. 클라우드와 GPU 기업들은 공장 및 물류센터를 위한 ‘로봇 전용 AI 플랫폼’을 공개하며 “로봇의 ChatGPT 모멘트가 왔다”고 선언했다. 로봇이 카메라와 센서로 현장을 인지하고 대형 AI 모델이 수집 데이터를 해석해 작업 순서와 경로 및 그립 방식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정형 산업용 로봇이 반복 작업에 특화됐다면 피지컬 AI는 불규칙한 환경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범용 작업자’ 지위를 노린다.
범용 작업자 지위 노리는 생성형 AI 기반 로봇
국제로봇연맹(IFR)과 주요 리서치 기관들은 2020년대 후반 로봇 시장 성장축이 제조 자동화 확대서 물류 및 서비스 로봇을 거쳐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와 협동로봇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제조·물류 기업들도 시장 흐름을 따라 생산라인 피킹과 팔레타이징 및 라스트마일 배송과 창고 재고 관리서 피지컬 AI 파일럿을 잇달아 발표했다. 연구실 데모에 머물던 휴머노이드와 자율로봇이 이제 실제 공장서 인간 작업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경쟁의 본질은 단순한 로봇 보급 확대가 아니다. 빠르게 데이터와 모델 및 로봇과 클라우드와 안전 규제를 묶은 ‘풀스택(Full-stack) 피지컬 AI’ 역량을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센서와 로봇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많지만 클라우드 기반 AI와 연결해 실시간으로 학습 및 제어하고 산업 안전 규제 안에서 대규모로 운영할 수 있는 국가는 제한적이다. 미국과 중국이 국가 차원의 투자로 생태계를 키우는 사이 유럽과 일본은 제조 강점인 정밀 제조 및 자동차와 물류 분야 특화 전략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제조 운영체제 선점 둘러싼 글로벌 패권 전쟁
결국 피지컬 AI 전쟁은 “누가 공장과 물류창고 운영체제(OS)를 선점하느냐”를 둘러싼 싸움으로 수렴한다. 특정 AI 및 로봇 플랫폼이 생산라인 깊숙이 들어가면 데이터와 부품 및 서비스까지 해당 생태계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관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가치사슬 핵심에 서 있는 제조 및 물류 강국인 만큼 주도권을 놓치면 곧바로 생산성과 경쟁력 격차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경기도를 비롯한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실증 인프라와 투자를 늘리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