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배너

[산업톺아보기] ‘줄었다’는 숫자, ‘남았다’는 노동 ?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의 그림자

㈜동인광학·㈜트리즈엔 사례 분석… "시간이 아닌 삶의 밀도를 덜어야"

고용노동부는 지난 19일,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의 제5차 회의를 열고 일터혁신 사례공유 포럼을 병행했다. 이 자리에는 유연근무제 도입과 근무체계 개편을 시범운영 중인 두 개 기업(광학렌즈 제조업체 ㈜동인광학과 소프트웨어 유통업체 ㈜트리즈엔)이 참여해 제도 정착 과정과 효과를 설명했다. 정부는 이들이 시행 중인 노동시간 단축 시범제도가 다른 중소기업으로도 확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수치 뒤의 역설: 자유인가, 책임 전가인가
두 기업의 사례는 분명 정책 의도에 충실하다. ㈜동인광학은 의무 근로시간을 포함한 ‘부분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시범 운영한 뒤, 현장 의견을 반영해 완전 선택제로 전환했다. 실제로 해당 제도 운영 후 품질보증팀의 연장근로가 40% 이상 줄었다는 수치가 나왔다. ㈜트리즈엔은 전 직원 대상 격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하고, 간주근로시간제와 보상휴가제를 연계해 실근로시간 단축을 시도 중이다. 부서별로 A조·B조를 나누고, 주당 평균 36시간 근무를 유지하면서도 임금은 줄이지 않았다.

[산업톺아보기] ‘줄었다’는 숫자, ‘남았다’는 노동 ?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의 그림자 - 산업종합저널 동향
생성형AI

하지만 이 수치들은 아직 일률적인 성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기업별로 업무 밀도, 고객 대응 시간, 회의 운영 방식이 달라 유연한 시간이 곧 여유로운 시간이라는 보장은 없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더라도, 고객 응대나 회의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선택’할 권한이 없다. 자율이라는 명목 아래 시간 사용의 책임이 개인에게만 전가될 수도 있다.

제도적 맹점: 체감 노동 강도와 공감대 형성
트리즈엔 사례만 보더라도 격주 4일제 운영은 부서별 잔류 인원 비율까지 감안해야 하는 민감한 설계다. 2주당 8시간을 줄였지만, 이는 결국 특정 요일마다 결원이 생기는 부서에서는 업무 재배치가 불가피하다. 이는 결국 관리자에게 인력 운영 부담으로 돌아오고, 일부 직원에게는 체감 노동 강도로 작용할 수 있다. 발표된 수치에서는 “근로자 불이익 없음”이 명시됐지만, 실제 체감되는 피로감이나 부서 간 형평성은 확인하기 어렵다. 제도의 취지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조직 내 불균형을 드러내는 수치는 아직 없다.

현장 컨설팅을 담당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공감대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명회, 시범운영, 설문조사 등 사전 과정이 잘 설계돼야 제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공감대가 기업 내부의 위계적 구조에서 얼마나 자율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일부 근로자들은 여전히 ‘눈치가 필요한 보상휴가’, ‘스스로 선택했지만 결과는 같아야 하는 유연근무’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다.

진짜 단축이란: 시계가 아닌 삶의 밀도 덜어내기
정부는 앞으로도 이 같은 사례를 기반으로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을 구체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추진단은 내년까지 매월 포럼을 이어갈 예정이다. 수치로는 분명 진척이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줄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삶은 나아졌는가’다. 시간은 숫자로 줄지만, 업무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 진짜 단축이란, 시계가 아니라 삶의 밀도를 덜어내는 일이어야 한다.


0 / 1000


많이 본 뉴스

[심층기획] 인간의 형상에 지능을 심다… 휴머노이드, 산업의 ‘라스트 마일’을 뚫다

인간의 실루엣을 닮은 강철의 존재들이 실험실의 문을 열고 거친 산업 현장의 최전선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상과학의 전유물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공지능(AI)이라는 두뇌와 정교한 센서라는 감각 기관을 장착하며 이제 산업 혁신의 실질적인 동력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2026년 현재,

[이슈기획] "기계가 스스로 고장 막는다"… 2025년 덮친 AI 스마트 공장 혁명

2025년 대한민국을 비롯한 글로벌 제조 생태계가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엔진을 장착하고 완전히 새로운 진화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사람의 개입 없이 기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불량률을 통제하고 멈춤 없는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궁극의 스마트 공장 시대가 닻을 올렸다. 사물인터넷 융

[이슈 기획] AI가 흔드는 반도체 제조, 누가 살아남을까

AI 시대, 미세공정만으론 버티기 어려운 구도 AI 수요 확대는 반도체 제조의 설계와 생산 방식을 동시에 바꾸고 있다.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공정과 후공정이 비교적 분리된 분업 구조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칩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정 전 단계가 긴밀하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기획] 한미 FTA 무관세 체제 종료…15% 상호관세, 산업계 ‘직격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달부터 미국이 한국산 수입품에 일괄 15% 상호관세를 도입하면서, 2012년 발효 이후 지속돼온 ‘무관세 프리미엄’ 체제는 막을 내렸다. 자동차, 철강, 기계 등 주력 수출 업종은 즉각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산업계는 현지화 확대와 외교적 대응을

[기획] ‘신중 속 선택적 확장’…2026년 기업 투자·경영 전략의 두 얼굴

2026년을 맞이한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고환율, 고금리, 글로벌 통상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확장’보다는 ‘유지’, ‘보수’보다는 ‘선택적 전진’을 택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움츠러든 것은 아니다. 산업별·기업규모별로 온도차가




산업전시회 일정


미리가보는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