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에서 친환경차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접어들면서 몇몇 내연기관차 부품 업계의 산업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보 부족과 자금 부족으로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환경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내연기관 차량의 퇴출 소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2035년 내연기관을 퇴출 또는 판매중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U의 경우 더 강력한 입장이다. 2030년까지 신차의 탄소 배출량을 50% 줄이고, 2035년까지는 100% 낮춘다는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이에 발맞춰 완성차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의 생산 중단을 선언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인 현대와 기아차에서는 2035년 유럽을 시작으로 2040년부터 주요 시장에서 전동화 차량만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오는 2030년 무렵이면 세계 연간 신차 판매량 중 친환경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47.1%에 달한다는 전망이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이 친환경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내연기관을 구성하고 있던 부품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내연기관차에 탑재되는 자동차 부품 수는 약 2.5~3만개로 집계된다. 이에 비해 전기․수소차는 각각 1.5만개, 2.3만개로 최소 2천~1만개 정도의 부품이 줄어든다.
일본자동차부품공업협회가 내연기관과 전기차 부품 수를 비교한 자료에는 엔진과 배기, 연료계 부품이 100% 감소하고, 변속기와 샤프트 등의 동력전달 부품은 37% 줄어들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엔진부품, 동력전달, 전기장치 업계를 향후 감소 업종으로 지목했다. 현재 해당 기업 수는 4천195개사, 고용 인원은 10만8천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0곳 중 7곳 ‘아직 계획 없다’
친환경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내연기관의 영역을 대체하고 있지만, 국내 부품 업체들 대부분은 아직 계획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부품업계 2천120개 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2021년 자동차 부품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72.6%의 업체가 미래차 관련 준비에 ‘아직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실제 미래차 분야 진출도 더딘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지난해 12월 개최한 자동차산업 발전 포럼에서 발표한 자료에는 국내 완성차 및 부품사 300개사 중 56.3%(169개사)가 미래차 분야에 진출하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보가 없는데 어떻게 뛰어들어요”
미래차 관련 부품 개발에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대구에 있는 한 자동차 부품 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아는 게 없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1차 업체에서도 아직 큰 움직임도 없고, 관련 시그널도 없는데 우리가 먼저 뛰어들 순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부품 업계들이 품목 전환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앞서 살펴봤던 한국자동차연구원 설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계획 없다’고 언급한 업체들 중 60.7%는 미래차 사업 진출에 필요성을 느끼지만, 계획이 없는 가장 큰 이유로 ‘자금’과 ‘정보’의 부족을 1, 2위로 꼽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보 부족은 왜 발생 하는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의 특수성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맹지은 연구위원은 “2차나 3차사는 단순히 생산 물량에 관한 정보만 받을 뿐이지, 연구개발과 같은 곳에 뛰어들만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얻기는 힘들 것”이라며 “실제로 2차 3차 업체들에서 연구개발 관련 회의를 진행하는 기업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 구조는 완성차 업체를 필두로 1차, 2차, 3차 도급 방식의 형태로 피라미드형 구조를 띈다. 윗단에 속한 완성차 업계와 1차사가 물량을 주문하면 2차, 3차 업체는 생산에 착수하면 그만인 것이다.
본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 한국자동차부품협회는 “해외 부품 제조사는 완성차와 제조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부품을 개발하고 생산에 협력하지만, 국내 부품 산업은 독점 수준으로 수직 계열화된, 즉 갑․을 관계임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은 드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생산 전환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하고, 여태 생산했던 분야를 버리고 새로 투자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면서 “기존 생산중인 제조사들과의 노하우 등 격차가 크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러한 수직적 구조로 발생한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계가 협업과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맹 연구위원은 “전기차 전환으로 부품 수가 줄면, 시장이 줄어듦에 따라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다소 비관적 이야기도 있지만, 현재 밑단에서 윗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1차와 2차사들이 같이 뭉쳐서 산업 전환을 끌고나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세계 각국에서 친환경차 확대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품목의 연구 개발에 3~4년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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