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쟁 리스크가 본격화되면서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나프타와 전략 금속 텅스텐 가격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정부는 나프타 수출을 사실상 전면 제한하며 내수 우선 공급을 추진 중이나, 현장에서는 포장재와 공구라는 제조업의 두 축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는 모습이다. 이에 산업통상부는 국내 규제를 넘어 전 세계 정보망을 가동해 대체 수입선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포장재 재고 소진 임박… 식품·유통가 생산 차질 공포
식품 포장 현장은 이미 비상 체제에 진입했다. 라면과 과자 포장 필름, 음료 페트병의 원료인 플라스틱 수지는 대부분 나프타에서 추출되는데, 전쟁 여파로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며 수급까지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포장기자재전' 현장에 참가한 포장재 업체 관계자들은 원가표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견적이 요동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재고 사정이 심각하다. 국내 주요 업체들이 통상 확보해온 2~3개월 치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이달 말이면 여유분이 바닥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킨텍스 전시장에서 만난 제조사 관계자는 현재 속도라면 포장 필름 재고가 2주 내 위험 수준에 도달한다며, 원료 추가 확보가 안 될 경우 공장을 세워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나프타 수급 불안이 상품 생산 중단이라는 실질적 위기로 연결되는 양상이다.
텅스텐 5배 폭등… 방산 수요에 밀려난 산업용 공구
공구업계는 텅스텐 가격 급등에 따른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의 수출 통제와 이란 전쟁 이후 군수·방산 수요가 폭증하면서 텅스텐 가격은 1년 사이 500% 이상 치솟았다. 초경합금 공구의 80% 이상이 텅스텐 분말을 사용하는 구조에서 소재 가격이 4배 이상 오르자,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 수익 구조가 형성됐다.
![[기획] 나프타·텅스텐 ‘이중 쇼크’… 공급망 전선, ‘글로벌 대체선’으로 넓힌다 - 산업종합저널 에너지](http://pimg3.daara.co.kr/kidd/photo/2026/04/01/thumbs/thumb_520390_1775002922_31.jpg)
최근 킨텍스에서 열린 포장전문 전시회에서 많은 참관객들이 방문했다.
텅스텐은 방산과 항공,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전략 금속이라 글로벌 수요가 해당 분야로 우선 배정되는 점도 문제다. 일반 산업용 공구용 물량은 후순위로 밀리며 납기와 가격을 맞추기 어려운 모양새다. 강원도 영월 상동광산 재가동에 따른 기대감도 존재하나, 광석의 분말화 과정과 글로벌 시세 연동을 고려할 때 단기적인 물량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 업계 “헬륨·브롬화수소 수급 이상 무”… 학습된 방어력
나프타와 텅스텐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달리, 반도체 전선은 상대적으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중동 상황과 관련해 헬륨, 브롬화수소 등 핵심 원자재 재고를 일정 수준 사전 확보했다고 밝혔다. 과거 공급망 대란을 거치며 쌓인 학습 효과가 빛을 발하는 양상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기업별로 복수의 조달 경로를 운영하고 있어 단기적인 수급 불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생산 공정에 직접적인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장기화 시나리오에 대비해 대체 공급처 확보 노력을 지속할 방침이다.
산업통상부, ‘글로벌 대체 수입선’ 발굴 총력… 긴급 화상회의 개최
정부는 국내 규제를 넘어 전 세계적 자원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산업통상부는 3월 31일 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주재로 중동·아프리카 등 11개국 상무관과 15개국 KOTRA 무역관장이 참여하는 긴급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단순한 동향 파악을 넘어 실행 가능한 대체 수입선을 현장에서 즉각 발굴하라는 명을 내렸다.
여 본부장은 “각국 현장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대체 수입선을 발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현지 정부 및 핵심 자원 기업과의 협력 채널을 공고히 할 것을 당부했다. 산업통상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3월 27일 시행)이라는 초강수와 더불어, 고위급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원유와 나프타의 신규 도입 후보국을 넓혀갈 계획이다.
결국 현 위기는 한국 제조업 기반이 지정학적 리스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나프타와 전략 금속의 공급망 다변화 및 비축 전략을 어떻게 재설계하느냐가 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할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