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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톺아보기] 7천만 원짜리 죽음, 그 후 3년

중대재해처벌법의 공백, 수사 중인 법과 멈춘 현장

기계가 사람을 집어삼켰다. 쇳소리는 멎었지만, 현장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날 이후, 그의 이름은 기록 대신 통계가 됐다.

3년 전, 사람을 사람답게 일하게 하자는 법이 생겼다. 중대재해처벌법. 이름부터 무겁다. 사람을 다치게 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일.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니, 너무 늦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했다. 적어도 법은, 죽음 앞에서만큼은 무기력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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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그러나 세 해가 지난 지금, 법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사망사고 73%. 아직도 조사 중이란다. 그 사이에도 누군가는 출근했고, 누군가는 퇴근하지 못했다. 수사는 멈췄고, 재해는 계속됐다. 법의 이름은 남았지만, 법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죄는 많았고, 유죄는 가벼웠다. 집행유예 85.7%. 벌금 평균 7천만 원. 사람 하나 잃고도, 기업은 흔들리지 않았다. 관리자는 남았고, 노동자는 사라졌다. 형식만 남긴 판결문은, 법정의 공기를 무겁게 하지도 않았다.

작업장은 변한 게 없다. 소음도, 진동도, 화학물질도 그대로다. 법이 바꾼 건 종이 몇 장, 규정 몇 줄뿐이었다. 안전보건 관리체계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 체계 안에 일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죽음은 관리되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건, 죽음의 말투였다. 한때는 사고였다가, 이제는 수사 중이다. 기다리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누구는 사고 이후에도 숨 쉬고, 누구는 그렇지 못했다. 그 차이를 만드는 데 3년이면 충분했다.

책임자를 처벌하자던 법은, 책임이 사라지는 방식을 배웠다. 기업은 외부 자문을 받았고, 문서는 완벽했다. 안전은 형식이 됐고, 현장은 여전히 위험했다. 누군가는 철근 아래에서 손가락을 잃고, 누군가는 형사책임에서 빠져나왔다.

7천만 원. 그것이 목숨값이라면, 이 나라는 아직도 싸다. 법의 말은 무겁지만, 현실은 가볍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또 한 명의 이름이 지워졌다.

어쩌면 법이 지키려던 건 사람이 아니라, 책임의 모양이었는지도 모른다. 더는 사고가 없기를 바란 게 아니라, 사고가 문제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우리는 오늘도 출근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절실한 건 퇴근일지도 모른다. 현장은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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